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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웹을 만들고, 앱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회차: 32화

3개월 동안 웹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검색이 되고, 제품 상세가 뜨고, 성분 분석이 보이고, 비교 기능까지 넣었어요. AI 다섯 명에게 동시에 화면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으며 고치고, 다듬고, 또 고쳤습니다.

나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품 성분을 확인하는 건 언제인가요?

장을 볼 때입니다. 마트에서 과자를 들고, 뒷면을 뒤집어보는 그 순간이요.

그 순간에 노트북을 꺼내서 웹사이트를 여는 사람은 없잖아요.

온라인 쇼핑몰을 잘 만들어놨는데, 손님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가게가 잘못된 게 아니라, 가게가 있어야 할 장소가 달랐던 거예요.


앱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마트에서 꺼내는 건 핸드폰이니까요. 바코드도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거고, 성분 정보도 작은 화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3개월의 작업이 헛된 건 아니었어요. 웹에서 배운 것들 — 데이터가 없을 때 화면을 어떻게 처리할지, 성분을 3층으로 나눠서 보여주는 구조, 이미지가 없는 제품이 대부분이라는 현실 — 은 그대로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도시를 옮기는 게 아니라, 같은 설계도로 다른 땅에 짓는 느낌이었어요.


이번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웹을 만들 때는 AI에게 “이 화면 어떻게 생각해?” 하고 다섯 명에게 한꺼번에 물어보는 방식이었어요. 의견은 많이 나왔지만, 정리하는 건 전부 제 몫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역할을 나눴어요. 31화에서 이야기한 에이전트 팀에 두 명을 추가했습니다.

UX설계사. 화면 흐름을 처음부터 설계하는 역할입니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어떤 앱에 익숙한지 — 배달 앱, 쇼핑 앱, 금융 앱 — 그 패턴을 알고 있어서, “이 버튼은 여기에 있어야 자연스럽습니다”라고 안내해요.

디자인감리관. 완성된 화면을 검수하는 역할입니다. 건물 지을 때 감리사가 오잖아요. “이 벽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 문손잡이가 반대쪽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하나하나 체크하는 사람. 그 역할을 AI가 합니다.


설계사가 만든 흐름을 따라 화면을 만들었습니다.

홈 화면, 검색 결과, 제품 상세, 바코드 스캔, 즐겨찾기, 프로필, 설정. 7개 화면이 차례로 완성되었어요.

코드 에러가 0건이었습니다. 화면이 다 떴어요. 동작했습니다.

이쯤이면 괜찮다고 생각하겠죠? 저도 그랬습니다.


감리관을 불렀습니다.

“이 7개 화면을 검수해 줘.”

돌아온 결과가 18건이었어요.

가장 심각한 문제 두 가지를 이야기하면요.

첫 번째. 바코드 스캔 화면에서, 제품이 안 나오면 “제품명으로 검색하기”라는 버튼이 뜹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홈 화면으로 이동하는데, 검색창이 활성화되지 않았어요.

사용자는 “검색하기”를 눌렀는데, 검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겁니다. 엘리베이터에서 3층 버튼을 눌렀는데, 1층 로비에 도착한 느낌이에요.

바코드 커버리지가 0.62%라고 했잖아요. 100번 스캔하면 99번은 제품이 안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 99번마다 이 문제를 만나는 거예요.

두 번째. 즐겨찾기 탭이 있는데, 제품 상세 화면에 즐겨찾기 버튼이 없었어요.

추가할 방법이 없는 즐겨찾기. 입구가 없는 방이었습니다.


나머지 16건도 비슷한 결이었어요.

버튼의 터치 영역이 너무 작아서 손가락으로 누르기 어렵다든가, 팝업이 뜰 때 뒤쪽 화면이 어두워지지 않아서 경계가 모호하다든가, 시각 장애가 있는 분이 쓸 수 있도록 하는 접근성 표시가 전혀 없다든가.

전부 코드 에러는 아니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정상적으로 동작하고 있었어요.

코드에 에러가 없는 것과, 사람이 쓸 수 있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것과,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다른 것처럼요.


18건을 하나씩 고쳤습니다.

검색 버튼을 누르면 검색창이 활성화되도록 바꿨고, 제품 상세에 즐겨찾기 하트 버튼을 달았고, 터치 영역을 넓히고, 팝업 배경을 어둡게 만들었어요.

시간이 좀 걸렸지만, 감리관이 없었으면 이 문제들을 언제 발견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첫 사용자가 “바코드 스캔하고 검색 버튼 눌렀는데 아무것도 안 돼요”라고 말해줬을 때 알았겠죠.

그때의 당혹감보다는 지금의 당혹감이 훨씬 낫습니다.


웹을 만들고, 앱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코드를 바꾼 것이 아니라, 서비스가 있어야 할 장소를 바꾼 거예요.

그리고 바꾸는 과정에서, “동작하는 것”과 “쓸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다는 걸 다시 한번 배웠습니다.

건축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감리사가 와서 문손잡이 18개를 짚어줬고, 그제야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되기 시작했어요.


다음 화에서는, 그 집에 처음으로 불이 켜진 이야기를 할게요. 핸드폰에서 “우유”가 검색되던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