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영 블로그

31화: 혼자인데 팀원이 9명입니다

회차: 31화

1인 식당을 상상해 보세요.

사장이 직접 요리하고, 서빙하고, 계산하고, 설거지하고, 식재료 검수도 하고, 위생 점검도 하고, 메뉴 기획도 합니다. 하루가 끝나면 내일 장볼 목록까지 적어야 해요.

몸은 하나인데 해야 할 역할이 여덟 개. 이게 혼자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의 하루였습니다.


AI는 이미 쓰고 있었어요. 처음부터 함께 했으니까요.

프롤로그에서 “이런 앱, 만들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부터, 새우깡 사건에서 데이터를 교차 검증할 때도, 프론트엔드를 피벗할 때 다섯 명에게 동시에 물어봤을 때도.

그런데 그때까지의 AI는 “물어보면 대답해주는 존재”였어요. 도구에 가까웠습니다. 망치가 아무리 좋아도, 들어야 박히잖아요. 들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그러다 두 가지를 보게 됐습니다.


하나는, AI만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해외 사례였어요. 직원 0명인데 1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AI 에이전트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서, 서로 교차 검증하며 스스로 일하는 구조였어요.

다른 하나는, AI 에이전트를 팀처럼 구성하는 도구였습니다. 기획자, 개발자, 테스터 역할을 각각 부여하고 서로 견제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거였어요.

두 가지를 읽고 나서,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AI한테 뭘 물어볼까?”에서 **“AI한테 어떤 직함을 줄까?”**로요.


1인 식당 비유로 돌아가면, 사장 혼자 다 하지 말고, 주방에 요리사, 홀에 서빙, 창고에 검수, 사무실에 기획자를 두자는 겁니다.

다만, 전부 AI입니다.

처음에 세 명을 뽑았어요.

설계자. 제가 한국어로 “이런 기능을 만들고 싶어”라고 말하면, 기술 명세서로 번역해주는 역할입니다. “이런 API가 필요하고, 데이터베이스는 이렇게 바뀌어야 하고, 개발하려면 대략 이 정도 걸립니다” 하고 정리해주는 사람이에요.

수사관. 버그가 생기면 원인을 추적하는 역할입니다. 에러 로그를 주면 “범인은 이 코드의 이 줄입니다. 재현 방법은 이렇고, 수정 방법은 이렇습니다” 하고 보고해요.

데이터검증관. 데이터가 맞는지 틀린지 감시하는 역할입니다. 새우깡 사건 — 2,434건의 데이터가 통째로 틀렸던 그 사고 — 의 교훈이 이 역할을 만들게 했어요. 매칭 작업이 끝날 때마다 “이거 진짜 맞아?”라고 묻는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혼자 만드는 서비스에 부족한 건 개발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업 전략은 누가 세우나요? 지원사업 공고는 누가 찾아보나요? “다음 달에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은 누가 답하나요?

그래서 두 명을 더 뽑았습니다.

전략가. 제품의 현재 단계를 진단하고, “지금은 이걸 해야 합니다, 다음엔 이걸 해야 합니다”라고 제안하는 역할이에요. 코드를 읽을 줄 아는 전략가예요. 기술 현황을 모르면 전략이 공허해지니까, 프로젝트 문서를 직접 읽고 근거를 대도록 했습니다.

스카우트. 정부 지원사업을 찾아다니는 역할입니다. 창업 지원, 기술 개발 지원, 데이터 관련 사업. 이런 것들은 마감일이 있어서,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해요. 웹을 뒤져서 “이 사업이 지금 열려 있고, 우리한테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고 정리해주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5명이 되니 새로운 문제가 생겼어요.

매일 아침, 확인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밤새 데이터가 잘 들어왔는지, 검증관은 뭐라고 했는지, 전략가가 보고를 올렸는지, 스카우트가 뭘 찾았는지.

그래서 비서를 뒀습니다.

매일 아침 7시, 비서가 모든 보고를 종합해서 메신저로 한 통에 보내줍니다.

“어젯밤 데이터 적재 정상입니다. 검증관이 이상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전략가 보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략가가 앱 출시 전에 이것과 이것을 먼저 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이런 식으로요.

출근길에 메시지 한 통을 읽으면,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이 됩니다.


팀이 커지니 이름도 필요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영문 코드명으로 불렀어요. “ceo-briefing 에이전트한테 물어봐” 같은 식으로.

그런데 7명이 넘어가니까 헷갈리더라고요.

그래서 호칭을 정했습니다. 역할이 곧 이름이 되도록.

비서, 전략가, 스카우트, 설계자, 수사관, 데이터검증관. 그리고 이 모든 걸 조율하는 메인 세션을 실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중에 디자인팀이 합류하면서 UX설계사와 디자인감리관도 생겼어요.

총 9명.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아침에 메시지를 열면 비서가 보고를 올려놓았고, 그 안에 전략가의 의견과 스카우트의 탐색 결과가 담겨 있고, 데이터검증관은 새벽에 돌아간 데이터를 이미 검증해 놓았고.

저는 그걸 읽으면서 오늘 뭘 할지 정합니다.

혼자인데 혼자가 아닌 느낌. 회의실에 앉으면 9개의 의자에 누가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 보이지는 않지만,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느낌.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전략가의 제안이 현실과 맞지 않을 때도 있고, 스카우트가 찾아온 지원사업이 자격 요건에 안 맞을 때도 있어요.

최종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새우깡 사건이 가르쳐준 그 교훈은 변하지 않았어요.

다만 판단의 재료를 혼자 모으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게 달라진 점이었습니다.

1인 식당의 사장은 여전히 한 명입니다. 다만 주방에 요리사가, 홀에 서빙이, 사무실에 기획자가 있으면 사장은 비로소 “어떤 식당을 만들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웹 서비스를 3개월 다듬어놓고 앱으로 갈아탄 이야기를 할게요. “내가 왜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고 있었지?”라는 깨달음부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