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을 처음 실행했습니다.
핸드폰 화면이 빨갛게 변했어요.
에러 메시지가 화면 가득 떴습니다. 읽어보면 영문인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고, 확실한 건 하나 — 이건 정상이 아니라는 것.
3개월간 만든 코드를, 처음으로 진짜 핸드폰에서 돌려본 순간이었는데, 돌아온 건 빨간 화면이었어요.
Expo라는 도구가 있습니다.
웹에서 쓰던 코드를 핸드폰 앱으로 바꿔주는 다리 같은 건데, 이 다리를 건너려면 조건이 있어요. 사용하는 부품들의 버전이 딱 맞아야 합니다.
A 부품은 3.2 버전이어야 하는데 3.5를 쓰고 있고, B 부품은 2.1이어야 하는데 2.0을 쓰고 있고.
부품 하나의 버전이 0.1만 달라도 다리 위에서 멈춰버리는 겁니다.
문제는, 어떤 부품이 문제인지 한 번에 안 보인다는 거였어요.
에러 메시지는 “뭔가 안 맞는다”고만 말해주지, “네가 A 부품을 3.5로 써서 그래”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탐정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용의자가 10명이면, 한 명씩 방에서 내보내면서 “이 사람 나가니까 에러가 사라지나?” 확인하는 방식이에요.
처음에는 반대로 해봤습니다. 전부 내보내고, 빈 방에서 시작한 거예요. 아무 부품도 없는 깨끗한 상태.
화면이 떴습니다. 하얀 화면. 에러 없음.
그 다음, 부품을 하나씩 넣었어요. 하나 넣고 — 괜찮음. 둘 넣고 — 괜찮음. 셋 넣고 — 빨간 화면.
범인을 찾았습니다. 버전을 맞춰주니, 에러가 사라졌어요.
나머지 부품도 같은 방법으로 하나씩 검증했습니다. 우아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방법이었어요.
에러가 사라지고, 화면이 떴습니다.
홈 화면. 검색창. 그 아래로 카테고리들.
검색창에 “우유”라고 입력했습니다.
1초. 2초.
화면에 목록이 나타났어요.
서울우유, 매일우유, 남양우유, 연세우유. 저지방, 무지방, 초코, 딸기. 20개쯤 되는 제품이 작은 화면 안에 줄지어 나왔습니다.
하나를 눌렀습니다.
제품 상세 화면이 떴어요. 성분 분석, 3층 구조로 정리된 원재료, 영양 정보. 30화에서 이야기했던 그 번역된 성분 이름들이 핸드폰 화면 안에서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감정이 들었어요.
3개월 전까지, 이 모든 데이터는 터미널이라는 검은 화면 안에 있었습니다. 흰 글씨로 빼곡하게 적힌 숫자와 텍스트. “우유”를 검색하면 JSON이라는 형식으로, 기호와 괄호 사이에서 제품명이 겨우 보이는 정도였어요.
그게 지금, 손 안에서 카드 형태로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데이터인데, 장소가 바뀌니까 전혀 다른 것이 되었어요.
편지를 써서 서랍에 넣어두다가, 처음으로 봉투에 넣고 우체통에 넣은 느낌이었습니다. 편지가 갈 곳이 생긴 거예요.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지는 대부분 없었어요. 제품 100개 중 99개에 사진이 없다는 건 여전했습니다. 대신 카테고리별 아이콘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요.
바코드 스캔은 100번 중 99번 실패합니다. 0.62%라는 숫자는 아직 그대로예요. 하지만 실패하면 “제품명으로 검색하기”가 뜨고, 이번에는 — 감리관 덕분에 — 검색창이 제대로 활성화됩니다.
영양 성분은 5개 중 1개만 있고, 성분 번역은 80%까지 왔지만 20%는 아직 영문 그대로입니다.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떼는 것 같았어요. 완벽하지 않고, 위태위태하고, 금방 넘어질 것 같지만. 걷고 있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AI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런 앱을 만들고 싶은데…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시즌 1의 마지막 화에서 이렇게 썼어요. 그 “물론이죠”에는 이런 뜻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맞았어요. 쉽지 않았습니다.
2,434건의 데이터가 통째로 틀렸던 적이 있었고, 3,744만원짜리 견적서 앞에서 멈춘 적이 있었고, 1년 동안 바로 옆에 있는 API를 못 본 적이 있었고, 코드 에러 0건인데 문제가 18개인 적이 있었고, 빨간 에러 화면 앞에서 부품을 하나씩 빼보는 밤이 있었습니다.
지금, 핸드폰에서 “우유”를 검색하면 20개 제품이 나옵니다.
아직 첫 사용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다운로드 수는 0이에요. 수익 모델도 아직 없고, 바코드 커버리지도 1%가 안 되고, 번역 안 된 성분이 20%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이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호빵 뒷면을 뒤집어보던 날에서 시작해서, 핸드폰에서 우유가 검색되는 날까지.
처음에 AI가 “물론이죠”라고 했을 때, 저는 그게 응원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그건 응원이 아니라 사실이었어요.
할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았을 뿐.
잠깐, 여기서 끝날 줄 알았습니다.
앱이 돌아가고, 데이터가 보이고, 검색이 되니까 “이제 됐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앱이 돌아간다는 것과 데이터가 맞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