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영 블로그

1화: 성분표라는 외국어

회차: 1화

프롤로그에서 호빵 이야기를 했습니다. A 브랜드, B 브랜드, C 브랜드, D 브랜드, E 브랜드. 다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는데, 성분표는 전부 달랐다고요.

그 뒤로 저는 좀 이상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마트에 가면 제품을 뒤집어보게 된 거예요.

과자를 집으면 뒷면부터 봅니다. 간장을 고를 때도 앞면의 ‘양조간장’이라는 글씨보다 뒷면의 작은 글씨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음료를 고를 때도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어요.

성분표는 공개되어 있지만, 사실상 읽을 수 없다.

‘공개되어 있다’와 ‘읽을 수 있다’는 전혀 다른 말이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우리가 흔히 먹는 과자 하나를 뒤집으면, 이런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밀가루(밀:미국산, 호주산), 팜유(말레이시아산), 감자플레이크(독일산), 변성전분, 식물성유지(채종유, 대두유), 옥수수전분, 설탕, 정제소금, 양파분, 탈지분유, 산도조절제, 유청, 밀크칼슘혼합분말, 마늘분, L-글루탐산나트륨(향미증진제), 5’-리보뉴클레오티드이나트륨(향미증진제), 후추분, 유당, 파프리카추출색소, 녹차풍미액, 쇠고기맛베이스시즈닝…

이게 한 제품의 성분표 일부입니다. 끝까지 다 적으면 이보다 훨씬 길어요.

저는 이걸 처음 제대로 읽어보려고 했을 때, 밀가루 다음에 나오는 ‘변성전분’에서 이미 멈췄습니다. 변성. 전분. 전분이 변한 건가? 왜 변한 거지?

그 뒤로는 눈이 미끄러지듯 지나갔어요. 읽고 있긴 한데,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 상태.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성분표가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가 정리한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부딪히면서 느낀 것들입니다.

첫째, 이름이 낯설습니다.

L-글루탐산나트륨.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실 이건 MSG입니다. 우리가 흔히 ‘미원’이라고 부르는 그것이에요.

그런데 성분표에는 ‘MSG’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다. 화학 명칭으로 적혀 있어요. 5’-리보뉴클레오티드이나트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MSG와 함께 감칠맛을 내는 데 쓰이는 성분인데, 이름만 보면 무슨 화학 실험 재료 같죠.

이런 이름이 한 제품에 열 개, 스무 개씩 나열되어 있습니다.

둘째, 같은 것을 다르게 부릅니다.

설탕 하나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떤 제품에는 ‘설탕’, 어떤 제품에는 ‘정제당’, 또 어떤 제품에는 ‘백설탕’이라고 적혀 있어요. ‘자당’, ‘과당액’, ‘고과당콘시럽’까지 가면 이게 다 설탕의 변형인지 아닌지도 헷갈립니다.

제조사마다 표기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정해진 표준 이름이 있긴 하지만, 실제 성분표에는 제조사가 자유롭게 적은 이름이 올라갑니다.

같은 재료인데 이름이 다르면,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셋째, 구조가 복잡합니다.

아까 그 성분표를 다시 볼게요.

밀가루(밀:미국산, 호주산)

이건 ‘밀가루’라는 원재료 안에 ‘밀’이 들어가 있고, 그 밀의 원산지가 ‘미국산, 호주산’이라는 뜻입니다. 괄호 안에 또 다른 정보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떤 제품은 이렇습니다.

쇠고기맛베이스시즈닝(정제소금, 쇠고기엑기스(쇠고기:호주산), 설탕, 마늘분, 양파분)

괄호 안에 괄호가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이 읽기에도 쉽지 않은데, 이걸 제품마다 비교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매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거예요.


호빵에서 시작된 궁금증은 이렇게 점점 커졌습니다.

처음에는 “왜 다르지?”였는데, 그 다음은 “뭐가 다른 거지?”가 됐고, 그 다음은 “이걸 어떻게 비교하지?”가 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달한 질문은 이것이었어요.

이걸 대신 정리해줄 수 있는 도구는 없을까?

없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찾은 범위 안에서는요.

그래서 다음에 한 일은, 정말 그런 게 없는 건지 해외까지 범위를 넓혀서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화에서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