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는 넘쳤습니다.
벤치마킹을 마치고, 9명의 팀원이 각자 기능 아이디어를 내놓았는데, 리스트가 끝없이 늘어났어요.
바코드 스캔, 성분 분석, 위험도 시각화, 개인 필터, 대체 상품 추천, 영양 비교, 리뷰, 커뮤니티, AI 영양 코치, AR로 성분표 실시간 분석, DNA 기반 개인 맞춤 추천까지.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약간은 무서웠고요.)
수진이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전부 만들 수는 없어요. 지금 우리가 가진 건 사람 한 명과 AI 아홉 명이에요.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포기할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MoSCoW 방법론을 적용했습니다. 모든 기능을 네 가지로 분류하는 거예요.
- Must-have: 이것 없으면 앱이 아니다
- Should-have: 있으면 훨씬 좋다
- Could-have: 여유가 되면 넣겠다
- Won’t-have: 지금은 만들지 않는다
Must-have에 남은 건 네 가지뿐이었습니다.
- 바코드 스캔
- 성분 인식 및 분석
- 기피 성분 경고
- 위험도 시각화
정말 핵심만 남긴 거예요. “스캔하면, 내가 피하려는 게 들어 있는지 바로 보여준다.” 이 한 문장이 되지 않으면, 나머지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Should-have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갔습니다.
- 영양 정보 비교
- 대체 상품 추천
- 검색 히스토리
있으면 훨씬 좋지만, 첫 버전에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닌 것들. 마음이 아팠지만, 현실적인 판단이었습니다.
Won’t-have 목록은 꽤 화려했습니다.
- DNA 기반 맞춤 추천: 유전자 검사 결과를 연동해서 개인 맞춤 분석
- AR 성분 분석: 카메라를 대면 실시간으로 성분 정보가 뜨는 기능
- 커뮤니티: 사용자끼리 리뷰를 남기고 소통하는 공간
- IoT 스캐너: 냉장고에 붙여두면 식품을 자동 인식하는 기기
꿈의 기능들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만든다 해도 검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JT가 말했습니다.
“Won’t-have는 ‘안 하겠다’가 아니라, ‘지금은 안 한다’예요. 나중에 사용자가 원하면 그때 꺼내면 됩니다.”
이 말이 마음을 편하게 해줬습니다. 포기가 아니라 유보. 무덤이 아니라 보관함.
수익 모델도 이때 초안을 잡았습니다.
- AI 영양 코치 (구독): 핵심 수익원으로 정의
- 대체 상품 추천 (제휴): 부가 수익원으로 정의
- 프리미엄 필터: 기본은 무료, 복합 필터는 유료
하지만 이것도 전부 “나중에” 목록에 들어갔어요. 지금은 수익 모델보다, **“이 앱이 정말 쓸만한가?”**를 먼저 검증해야 했으니까요.
v0.1의 검증 목표는 세 가지로 정해졌습니다.
- 처음 써보는 사람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 필터 설정이 어렵지 않은가?
- 기존 앱과의 차별화가 체감되는가?
회원가입도 뺐습니다. 저장 기능도 뺐습니다. 리뷰도 뺐습니다. 불완전한 완성을 서두르지 않기 위해, 기능을 줄였습니다.
“기능을 줄인 이유는 분명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가설에 장식을 다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아이디어의 무덤에 묻힌 것들은, 사실 지금도 노션 어딘가에 잠들어 있습니다.
언젠가 꺼내 쓸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영원히 잠들어 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한 그날이, 첵잇이 실제로 만들어질 수 있게 된 시작점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9명의 팀원과 매주 스크럼을 돌린 이야기를 합니다. 혼자인 사람의 주간 회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