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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AI 두 명이 동시에 말했다

회차: 17화

16화까지 백엔드 이야기를 했습니다. 데이터 수집, 파싱, 매칭, 검증, 영양정보, 첨가물 번역, 규제 모니터링.

되돌아보면, 저는 백엔드에 꽤 오래 빠져 있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어요.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매칭률을 0.1%라도 더 올리고 싶었고, 미매칭 원재료를 한 건이라도 더 줄이고 싶었고, 데이터 검증 규칙을 한 가지라도 더 추가하고 싶었습니다.

새우깡 사건 이후로 특히 그랬어요. “다시는 틀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뒤로, 데이터의 정확성에 대한 집착이 생겼습니다.

매칭률 99.5%인데 99.6%로 올릴 방법을 찾고 있었고, 미매칭 3만 8천 건을 3만 7천 건으로 줄이는 데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AI가 말했습니다.

“백엔드 완성도는 이미 충분합니다. 이제 프론트엔드로 넘어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비슷한 말을 했어요.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그런데 재미있는 건, 두 번째 AI도 같은 말을 했다는 겁니다.

코드 리뷰를 맡고 있던 두 번째 AI에게도 백엔드 코드를 보여주면서 “여기 더 개선할 부분이 없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랬어요.

“성능 최적화는 현 수준에서 충분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사용자가 실제로 쓸 수 있는 화면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AI 두 명이 동시에, 각자 따로, 같은 이야기를 한 겁니다.

“이제 그만하세요.”


솔직히, 처음에는 수긍이 잘 안 됐습니다.

데이터가 아직 완벽하지 않은데. 미매칭이 아직 3만 건이나 남아 있는데. 영양정보 커버리지도 아직 부족한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AI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아무리 데이터가 정확해도, 사용자가 볼 수 있는 화면이 없으면 그 데이터는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매칭률 99.5%와 99.6%의 차이를 사용자가 느낄 수 있을까요? 아마 못 느낄 겁니다. 하지만 화면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느낍니다. 서비스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3화에서 이야기한 MVP의 교훈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완벽한 것을 만들고 나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것을 먼저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

저는 백엔드에서 완벽을 추구하면서, 정작 MVP의 원칙을 잊고 있었던 거예요.

데이터가 99.5% 정확하면, 일단 그걸로 화면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나머지 0.5%를 개선하는 것이 더 나은 순서였습니다.


그래서 프론트엔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용자가 실제로 보게 될 화면. 제품을 검색하고, 성분을 확인하고, 다른 제품과 비교하는 화면.

이건 또 완전히 다른 종류의 작업이었어요. 백엔드가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이었다면, 프론트엔드는 ‘정리된 데이터를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같은 정보라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AI와 함께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AI는 제가 시키는 일을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한 건 맞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혼자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면, 자기가 집중하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기 쉽거든요.

AI 두 명이 동시에 같은 말을 했을 때, 저는 “아, 내가 숲을 못 보고 나무만 보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네, 이 부분은 아직도 좀 부끄럽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프론트엔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만든 것을 세상에 내놓는 과정. 데이터를 예쁘게 포장해서 사용자에게 건네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이야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