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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여기까지, 그리고 여기부터

회차: 21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저는 개발자가 아닙니다.

지금도 개발자가 아닙니다. 그건 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변한 것들이 있습니다.


호빵 뒷면을 뒤집어보던 날. “이 성분들이 다 뭔데?” 하고 궁금해하던 날.

그때의 저는 API가 정확히 뭔지도 몰랐고, 데이터베이스라는 말을 들으면 막연하게 ‘뭔가 큰 저장소’ 정도로 생각했고, 파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멈칫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API가 도서관의 창구 같은 것이라는 걸 알고, 데이터베이스가 규칙 있는 서랍장이라는 걸 알고, 파싱이 긴 문장을 의미 있는 조각으로 쪼개는 일이라는 걸 압니다.

더 중요한 건, 이것들을 실제로 해봤다는 거예요.


지금 이 프로젝트가 어디에 와 있는지 정리해볼게요.

식약처와 공공데이터포털의 API 11종을 연결했습니다. 제품 104만 건을 데이터베이스에 담았습니다. 98만 건의 원재료 텍스트를 파싱해서 개별 성분으로 분리했습니다. 그 성분들을 4만 3천 건의 표준 사전과 대조해서 725만 건의 매칭을 만들었습니다. 매칭률 99.5%. 620개 첨가물에 일상어 번역을 붙였습니다. 기피 성분 규칙을 만들고, 근거가 있는 것만 표시하도록 했습니다. 규제 변경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밤 데이터를 동기화하는 자동화를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사용자가 볼 수 있는 화면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걸 AI와 함께 했습니다.


AI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냐면요.

처음에는 “이것도 해줘, 저것도 해줘”에 가까웠습니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는 제가 정하고, 어떻게 만들지는 AI에게 물어보는 방식.

그런데 점점 달라졌어요.

AI는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짚어줬습니다. “이 매칭 방식에는 이런 리스크가 있습니다.” “백엔드에 너무 오래 매달리고 계십니다.” “이 코드는 메모리를 너무 많이 씁니다.”

물론 AI가 항상 맞는 건 아니었어요. 새우깡 사건은 AI가 만든 매칭 로직에서 발생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AI 두 명을 교차로 활용하면서, 한 명의 맹점을 다른 한 명이 보완하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저도 배웠습니다.

결국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AI가 “이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정말 맞는지를 확인하는 건 사람의 몫이에요.

새우깡 사건이 가르쳐준 게 바로 그거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데이터는 있다. 하지만 쓸 수 있는 형태는 아니다.

성분표는 공개되어 있지만 읽기 어렵고, 정부 데이터는 공개되어 있지만 바로 쓸 수는 없고, 영양정보는 포장지에 있지만 디지털로 접근할 수는 없고.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이 프로젝트가 하려는 일이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영양정보 커버리지를 더 늘려야 하고, 첨가물 번역을 더 확장해야 하고, 바코드 스캔 기능도 언젠가는 넣고 싶고, 수익 모델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나왔습니다.

“이런 앱, 정말 만들 수 있을까요?”

네. 만들 수 있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동작하는 것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AI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런 앱을 만들고 싶은데…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나중에야 알았다고 했죠. 그 “물론이죠”가 얼마나 많은 뜻을 품고 있는지요.

지금은 압니다. 그 안에는 이런 뜻이 있었어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데이터가 깔끔하지 않을 것이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것이고,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가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고, 가끔은 포기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연재는 여기서 일단 멈춥니다. ‘끝’이 아니라 ‘여기까지’입니다.

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데이터는 매일 밤 업데이트되고 있고, 규제 변경 모니터링은 돌아가고 있고, 개선할 것은 아직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이어갈 날이 오겠죠. 그때는 아마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진 서비스와,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올 수 있을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호빵 뒷면을 뒤집어보는 것부터, 여기까지.